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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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여당의 오만과 독선

與, 상임위장 선출 강행은 독단 / 野와 협치 바라는 민심 살펴야

21대 국회가 시작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5일 개원하고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장단을 선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야는 상임위원회 구성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6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포함한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였고, 미래통합당은 이에 반발하여 향후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기로 했다.

여야 간 합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누가 차지하는가에 대한 의견 대립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당은 관행대로 야당 몫을 주장하고 있고, 여당은 소위 ‘뉴노멀’(New Normal)시대를 맞아 준법 상임위를 강조하면서 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서 야당의 관행 주장 논리는 너무도 당연하여 재론할 필요가 없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기관이기 때문에 그 운영에 있어서 준법보다는 관행과 불문율이 더욱 중요하다.

김욱 배재대 교수 정치학

문제는 여당의 뉴노멀시대 논리이다. 뉴노멀은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이나 표준을 의미하는데, 경제 위기나 코로나 위기 이후에 자주 사용되고 있는 신조어이다. 뉴노멀시대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추측컨대 위기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야당의 발목잡기를 차단하고 문재인정부의 입법을 적극 도와야 한다는 논리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표면적인 논리의 배경에는 지난 21대 총선 결과 만들어진 176석의 슈퍼여당의 힘의 논리도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당의 주장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 첫째, 176석의 슈퍼여당 출현이 민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역구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득표율은 각각 49.9%와 41.5%였다. 그리고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위성정당만을 비교해 보면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득표율이 각각 33.35%와 33.84%로 비슷했다. 여당의 우호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열린민주당의 득표율 5.42%를 더한다고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은 38.77%로 미래통합당의 득표율 33.84%와 약 5%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결국 176석 슈퍼여당은 말만 연동형 비례제이지 실제로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준연동형’ 비례제가 만들어낸 아티팩트(artifact)이다. 비례성을 보장하는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제였다면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국회가 대통령의 입법을 돕겠다는 발상 자체가 의회제(내각제)라면 몰라도 대통령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대통령제하에서 국회의 핵심적 기능은 행정부 견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소야대 국회이든, 여대야소 국회이든 상관없이 적용되는 권력구조의 기본원리이다.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대통령과 행정부를 돕겠다는 발상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고, 협력통치를 바라는 민심에도 맞지 않는다.

여당의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은 그 어떤 논리로 포장한다고 해도 많은 국민의 눈에는 힘있는 자의 오만과 독선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힘이 민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의 특성으로 인해 과대하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오만은 오래가기 어렵다. 지난 17대 총선 결과 과반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민심의 가변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현 문재인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언제 급락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여당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

야당 또한 협치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반영하여 대화를 포기하지 말고 계속 협상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사의를 표명한 주호영 원내대표가 복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야당이 대화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내부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여론은 야당의 편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욱 배재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