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푼다는데 내 차례 올까, 속타는 ‘풀뿌리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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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22. 오전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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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상황 소상인들 속도전 기대
빚만 더 늘지 않나 걱정도 커져
“수입 끊긴 취약계층 빨리 지원을”
내수서 수출제조업으로 위기 확산
20일 오후 2시쯤 서울 역삼동의 도곡시장. 대를 이어 40년 동안 이곳에서 기름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홍근(41)씨는 “최근 매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의 30%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은 19일 정부가 발표한 50조원 규모의 비상금융 조치가 “남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은행 가서 신청하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냥 열심히 나와 하루 버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 달을 더 버티기 힘든 한계상황이라는 호소가 줄을 이었다.

백화점에 주로 납품하는 남성복 제조 업체의 A대표에게 자금 지원은 그림의 떡이다. 2016년 신청했던 회생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해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원 7명의 중소 여행사인 동우인투플랜 김유리 이사는 “3월부터 매출이 0”이라며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았고, 얼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2월 이후 신규 수주가 ‘0’이라는 공연·이벤트 장비 사업자 방아무개씨도 “코로나보다 빚이 늘어나는 게 더 겁나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을 신청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코로나19발 위기는 내수 업종에서 수출 제조업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현대차 체코 공장과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이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2주간 생산 중단에 들어간다. 이에 앞서 현대차의 미국 앨라배마 공장도 18일(현지시각) 확진자가 나와 멈춰섰다. 자동차 2~3차 부품 업체는 지금도 60~70% 수준인 가동률이 미국과 유럽 시장 위축으로 더 떨어질까 떨고 있다. 한 부품 업체 사장은 “공장이 며칠만 안 돌아도 자금 압박이 온다”며 “회사채 발행 지원 프로그램(P-CBO)을 가동한다고 들었는데 5월에나 된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차 부품 업체들은 이런 특수 상황에선 주 52시간 한시 완화 같은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동차산업협회는 “수요 절벽 땐 아예 공장을 닫더라도, 위기 이후 수요 폭증 때 주당 근로시간을 폭발적으로 늘려야 손해를 겨우 벌충할 수 있다”며 “이때 불법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미리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문태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금융 대책뿐 아니라 이번 조치에서 빠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해제 같은 규제 완화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타격에 매출이 급속히 줄어든 대형마트들은 그나마 배송이나 배달로 매출을 만회하고 싶지만, 의무휴업일 때문에 제때 배송도 못한다는 것이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대규모 시설투자 자금을 차입한 많은 중견기업은 코로나19 위기 훨씬 전부터 이자 유예조차 어려운 상황에 시달려왔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금융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획일적이고 단순한 ‘규모’ 기준 지원을 벗어나, 현장을 구체적으로 살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일자리를 잃거나 당장 수입이 끊긴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등 취약 계층 지원 방안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박성우·곽재민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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