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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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무장해제’ 되나… 與, 수사청 설치법 본격 시동

“2월중 발의… 6월중 입법 완료”
국민의힘 “주요 범죄수사 포기”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오른쪽)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2021년 업무보고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 전면 폐지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이하 수사청) 설립 로드맵을 구체화하면서 이른바 ‘검찰개혁 시즌2’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지나친 검찰 때리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산하 수사기소 완전분리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은 박주민 의원은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수사청 관련 법안을 2월 중 발의해 6월 중 입법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으로 검찰개혁의 1차 목표를 달성한 여당은 수사청을 설립해 현재 검찰에 남아있는 ‘6대 중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수사권을 이관하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만을 담당하도록 할 계획이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해 “기존 검사들이 수사청에 오려면 사표를 내고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검찰 수사권이 완전 ‘무장해제’되는 셈이다. 검찰 역할 축소에 따른 정원 감축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박 의원은 “인력 재편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거대 여당’ 민주당은 수사청 설립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박 의원은 수사청 출범 시점을 묻는 질문에 “법안 통과 이후 준비 기간이 필요해 약간 텀은 있어야 한다. 지도부와 상의 중”이라면서도 “현 정부 또는 21대 국회 임기 만료 전에 설립될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특위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해진 바가 전혀 없다”면서도 “회의에선 수사청법 유예기간을 1년 정도로 두자는 의견이 조금 우세했다”고 밝혔다. 이 경우 수사청 출범은 내년 6월 이후가 된다. 특위는 이미 수사청을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중 어느 부처 산하로 둘지도 논의 중이다.

국민의힘은 “검찰을 죽이려다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이날 통화에서 “정부가 당초에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면서 검찰에게 (수사청 이관을 추진 중인) 6대 범죄를 맡기려 했었다. 그마저도 걷어차면서 검찰의 수사기능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6대 범죄라는 건 법망을 교묘히 피해 나갈 수 있는 지능형 범죄다. 그걸 다시 (검찰에게서) 빼앗아간다는 건 국민 경제생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주요 범죄 수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 등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수사기능 중복 혼란 가중… 선거·부패범죄 대응력 약화”

 

여권이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특수 수사를 담당할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신설을 목표로 하는 ‘검찰개혁’ 속도전에 나서자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권의 행보에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검찰·언론개혁 관련 입법을 올 상반기 중 처리하지 않으면 추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권이 검찰개혁 차원에서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추진함에 따라 국민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과 경찰,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중대범죄수사청까지 더해지면 사건을 어디로 가져갈지 결정 단계부터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할 공산이 크다. 법조계에선 “비효율적인 수사기능 중복으로 혼란과 피해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권력기관에 대한 사법통제는 약해지고 정권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법사위는 지난해 12월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발의한 공소청법안과 검찰청법 폐지법률안과 관련, 공소청 설치에 따른 수사권한 이관문제에 대해 “헌법, 국민의 기본권 보장 강화, 수사권·기소권의 상호 견제 및 균형, 여론 등의 공감대, 국가의 전반적인 수사역량과 관계 기관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정책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는 상반기 중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에 기초한 공소청법과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공소청은 검찰에서 수사권을 떼어내고 공소 유지 기능만 남긴 기관이다. 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지난 9일 검찰의 수사권 폐지를 전제로 검찰이 담당하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6대 범죄를 담당할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을 발의했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방검찰청 검사장 선출제까지 검찰청법 개정안에 담아 발의했다.

 

국회 법사위는 검토보고서에서 우선 공소청으로 신분이 바뀐 검사만 수사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수사·기소권을 모두 가진 군검사, 공수처 검사, 특검과 형평성에도 법률적 정합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형사사법 제도의 측면에서는 검찰 수사권 폐지가 국가 수사역량·범죄 대응력에 미치는 영향과 수사권한 이관에 따른 수사 공백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검찰청이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바뀔 경우 기존 수사 부서에서 활동하던 검찰뿐만 아니라 수사 담당 직렬의 축소나 재배치가 불가피하다. 2019년 기준 검사를 제외한 검찰청 소속 공무원 중 전체 인원의 72.5%(6113명)가 검찰·마약수사직렬에 해당하는 만큼 검찰의 수사 기능 폐지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어 검찰이 쌓아온 전문 수사역량이 흔들릴 수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안 시행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의 변화가 본격화된 첫해에 검찰의 수사권 분리와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됐다. 보고서는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입법이 시행된 지 아직 두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며 “권력기관 개혁조치에 따른 새로운 수사체계가 완전히 정착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개정안에 따라 다시 수사체계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청법과 달리 공소청법에서는 검사의 신분보장 조항이 삭제되고 검사의 정원과 보수·징계에 대한 규정을 기존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검사의 중립성·독립성을 취약하게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개혁’ 이름 아래 성급하게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고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드는 사이 발생할 수사 공백과 혼란은 결국 국민의 손해로 돌아올 것”이라며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형사사법 제도를 뒤흔드는 졸속 입법은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동수·곽은산·이창훈 기자 d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