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법관 탄핵, 쥐가 고양이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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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65조 제1항은 이렇게 돼 있다.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지금 읽어드린 헌법을 보면 탄핵 대상의 여섯 번째로 법관을 명시하고 있다. 즉, 법관도 헌법이나 법률을 어겼으면 탄핵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번 주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161명이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탄핵은 국회 재적의원의 3분2 이상이 찬성해야 하지만, 대통령을 제외한 경우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소추안이 가결된다. 이후 헌법재판관 9명 중에 6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이 결정된다. 이 정권은 지금 헌재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판사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저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요.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됐던 임성근 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도 왜 기어이 탄핵하겠다며 벼르는 것일까요. 당시 판결문에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권유나 조언 정도에 불과해 재판권 침해는 없었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탄핵소추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일까요. 더군다나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1년 전인 작년 2월이다. 그런데도 왜 민주당은 1년이 지나서 이제야 탄핵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요. 왜 법사위 증거 조사도 생략한 채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요. 왜 갑자기 내용도 없는 ‘백지 상태의 탄핵 소추안’에 서명 날인부터 해서 발의를 한 뒤 속전속결로 끝을 보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정답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집권 세력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사법부의 엄중한 심판이 잇따라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진행된 판결만 보면 불과 석 달 전인 작년 11월6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공모’ 혐의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사회에서 공정한 여론 형성이 가장 중요한 의미 있는 것이고, 그것을 저버리고 조작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 한다.”

이 판결은 강성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친문 적자(嫡子)’ 김경수 지사를 대선 주자를 키워보려고 했던 희망을 뿌리부터 잘라버리는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무대에서 사라진 뒤 친문 세력은 김경수 지사의 부활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항소심 징역 2년 선고는 철퇴와 비슷했다. 징역 2년 형은 지사직 상실은 물론이고 피선거권 박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경수 지사는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항소심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어서 작년12월23일 조국 전 법무장관 부부가 그동안 의혹에 휩싸여 있었던 ‘자녀 입시비리 및 사모펀드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사실상 첫 판결을 내렸는데, 조국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 또한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친문 진영과 집권 세력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최소한 집행 유예 정도로 풀려나지 않을까, 법정 구속만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비교적 중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징역 4년 형에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을 해버린 것이다. 이 판결은 정경심 교수 본인은 물론이려니와 앞으로 조국 전 장관의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때도 집권 세력들은 특정 판사들과 사법부에 대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보다 더한 충격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시도가 2번이나 사법부에 의해 무산됐다는 사실이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지난해 11월24일 윤석열 총장에 대해 다수의 비위 혐의가 확인됐다면서 직무집행 정지를 명령하고 징계를 청구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작년 12월1일 서울행정법원은 그런 명령의 효력을 중지시켜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여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부터 집권 세력들은 사법부가 제동을 걸 경우 검찰 개혁을 명분을 내세운 ‘윤석열 찍어내기’가 제 뜻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추 장관은 자신이 장악하고 있던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밀어 붙였고, 여기서 윤 총장에 대한 정직2개월 결정을 얻어낸 뒤 이것을 청와대로 들고 가서 문 대통령의 재가까지 받아냈다. 이제 법무장관의 차원을 떠나서 대통령의 결정이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8일 뒤인 작년 12월24일 서울행정법원은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재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까지 뒤집어버렸다. 정직 처분을 멈춰달라고 제기한 윤 총장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때 대통령과 청와대는 충격의 침묵 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추 장관의 결정과 문 대통령의 재가는 전혀 정치적 무게가 다른 만큼 사법부가 적당한 선에서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는 쪽으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십중팔구의 확률로 믿고 있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와 버린 것이다. 이때 문 대통령, 청와대, 집권 여당은 심상치 않은 위기가 임박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권 세력들이 봤을 때는 ‘윤석열 찍어내기’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검찰 기소 단계에서 정권 비리 사건을 막기는 힘들어졌다고 봤는데, 그보다 앞으로 전개될 재판에서 사법부를 그대로 놔뒀다가는 정권의 기둥이 뽑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에 대한 유죄판결이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1월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인 최강욱에게 ‘조국 아들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으로 인한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서 징역8개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 이것은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유죄판결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친문 핵심 인사이자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 출신이며 조국 전 법무장관과 끈끈한 사이였던 최강욱 의원에게 또다시 사법부의 철퇴가 내려진 것이다.

최강욱 의원은 기소 당한 직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 그때까지도 뭘 모르고 마치 점령군처럼 검찰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던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오늘 아침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쪼록 그에게 세상이 만만하지 않음을 ‘확실히 느끼는’ 귀한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 그러나, 진 교수는 이렇게 말했지만, 집권 세력들은 세상이 만만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검찰의 칼날과 사법부의 철퇴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을지 모른다. 그 결과가 판사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집권 세력은 이쯤에서 ‘검찰 개혁’이든 ‘사법 개혁’이든 마치 적폐 청산 프레임을 덮어씌웠던 일들을 마무리 지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보다 몇 배, 몇 십 배 파괴력이 큰 사건들의 재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경남지사 대법원 판결, 그리고 울산선거 공작과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아울러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이 앞으로 재판정에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들은 조국 사건이나 최강욱 사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정권의 최고 수뇌부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자, 오늘의 결론은 이렇다. 이번 주에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될까. 그렇게 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리게 될까. 그렇게 되면 과연 우리 사법부에 확실한 재갈을 물리는 효과를 낳게 될까. ‘선출된 권력’의 오만방자함 앞에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가 무릎을 꿇게 될까. 집권 민주당이 임성근 판사를 탄핵시키는데 성공하면 그것이 4월7일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유권자들이 환호할까요, 아니면 엄청난 역풍을 몰고 오게 될까요. 여러분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광일 논설위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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