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드러난 유시민의 '대검 계좌추적'

공성윤 기자 2021. 1. 29. 14: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확인 못 해 준다"는 답변을 계좌추적 가능성으로 바꿔 의혹 확산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사과했다. "검찰이 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의혹을 꺼내든 것에 대해 1년여 만에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검찰의 모든 관계자께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말한 것이다. 과연 사과로 일단락될까.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됐던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거짓말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누가 허위정보를 제공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일갈했다. 유 이사장은 아직 답이 없다. 진짜 그 답은 뭘까.

"(2019년) 11월말~12월 초순쯤이라고 봐요.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재단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요." 유 이사장이 지난해 7월24일 MBC라디오에 나와 한 말이다. 이 발언을 기점으로 그의 의혹이 구체화됐다. 이에 앞서 노무현재단은 사법기관을 상대로 사전조사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은 노무현재단이 지난해 1~7월 대검찰청·경찰청·국세청·중앙선관위 등과 주고받은 공문을 입수했다. 이들 4개 기관은 금융실명법에 의해 계좌추적 권한을 가진 곳이다. 노무현재단은 지난해 1월 각 기관에 "귀 기관이 재단 국민은행 계좌에 대한 금융거래정보 제공 및 이에 관한 통지유예를 요청하였는지 사실 확인을 요청합니다"라고 써서 보냈다.

이에 경찰청은 "수사기밀성 보호라는 통지유예 제도의 취지상 정보제공 및 통지유예 요청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드릴 수 없음을 양해바랍니다"라는 답변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을 결재한 수사과 관계자는 "금융거래정보 제공 유무와 관련 없는 중의적 표현"이라며 "정보 제공 여부는 알 수도 없고, 설령 알아도 발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1년간 고통받은 한동훈 "누가 허위정보 제공했는지 밝혀라"

단 경찰은 이미 계좌조회에 대해 부인한 바 있다. 앞서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2019년 12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수사와 관련해 재단의 계좌를 추적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또 재단 고위 관계자는 "국세청과 중앙선관위로부터는 답변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청 등 모든 기관이) 공식적으로 답변 안 한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다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대검의 경우 답변 권한을 남부지방검찰청에 넘겼다. 남부지검의 답변은 명확했다. 지난해 7월1일 재단에 공문을 통해 "금융거래정보 제공 및 이에 관한 통지유예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유 이사장은 MBC라디오에서 "남부지검이 계좌를 안 본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요청한 사실이 없다'는 답변이 나온 뒤 남부지검은 의혹 대상에서 빠진 셈이다.

한편 노무현재단은 대검에 계좌조회 여부 확인을 재요청했다. 남부지검이 아닌 대검 스스로가 의혹에 답하라는 취지에서다. 이에 대검은 "일선 검찰청에서 귀 기관에 대한 금융거래정보를 제공받은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해 보았으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유 이사장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문구에 주목했다. 그는 "내가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계속 물어보는 건데 대검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고만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 이사장이 맨 처음 이와 같은 의혹을 제기한 배경은 뭘까. 이는 "누가 허위정보를 제공했는지 밝혀야 한다"는 한동훈 검사장의 지적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의혹의 시작은 2019년 12월24일이다. 이날 유 이사장은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처음 말했다.

이는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유 이사장이 기댄 나름의 근거는 금융기관의 답변이었다. 그는 시사저널에 "(재단 주거래은행인) 국민은행이 2019년 12월부터 한결같이 금융정보 제공 여부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며 "국민은행이 거래처에 얘기를 못해 준다는 건 (금융정보를) 제공했고 통지유예를 걸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답변 거부를 통지유예로 해석한 셈이다.

금융실명법에 따르면, 은행은 계좌 정보를 사법기관에 제공한 경우 10일 이내에 제공 사실을 계좌 명의인에게 알려야 한다. 단 증거인멸 등의 이유가 있으면 사법기관은 통지유예를 요청할 수 있다. 기간은 최장 1년이다. 금융감독원 자금세탁방지실 관계자는 "통지유예를 신청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통지유예 요청을 받았을 때 은행의 대응 방안에 관해선 법적으로 규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계좌조회 여부를 명백히 밝히지 않은 검찰을 비판하며 "국민은행 서강지점에 문서로 다 보관돼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서울의 국민은행 한 영업점에서 '내 계좌 정보를 사법기관에 제공한 적 있나'라고 직접 물어봤다. 담당자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답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영업점 직원이 본사에 물어본다 해도 그쪽에서 대답할 의무도 없다"고도 했다.

출근길 집 앞에서 만난 유시민 "죄송합니다"

국민은행 본사 공보팀 관계자는 "통지유예 여부는 전산 처리돼 알 수도 없고,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알려주게 되면 개인정보 유출로 은행이 처벌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즉 은행의 답변 거부를 통지유예의 근거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 유 이사장은 애초에 왜 국민은행에 계좌조회 여부를 물어봤을까. 유 이사장은 2019년 12월 이렇게 말했다. "알릴레오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관련해 검찰 행위에 비평해 왔다. 내 뒷조사를 하는 것 같다." 또 지난해 4월 MBC라디오에서 사회자가 '검찰이 이사장님을 캤다면 그 동기는 검찰 비판 발언이라고 보나'라고 묻자 "그것 말고 뭐 있겠어요"라고 답했다. 검찰을 비판하자 계좌를 추적당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개인 또는 재단의 계좌를 조회하려면 법원으로부터 '금융계좌추적용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금융실명법 서식 관련 규정에 따르면, 해당 영장에는 청구 사유와 피의자의 죄명을 적게 돼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을 비판했다고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거나 영장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사저널은 1월27일 오전 6시 유 이사장의 서울 방배동 자택을 찾았다. 두 시간여 기다린 끝에 오전 8시30분쯤 집에서 나오는 유 이사장과 마주쳤다. 그는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 곧바로 올라탔다. 기자가 명함을 건네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유 이사장은 "죄송합니다"란 한마디만 남겼다. 곧 차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차가 떠났다. 5분 뒤 유 이사장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내왔다. "할 수 있는 말은 글(사과문)에 다 해서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양해 청합니다."

➊ 2020년 1월22일 경찰청이 노무현재단에 보낸 답변 공문 ➋ 2020년 7월1일 서울남부지검 답변 공문 ➌ 2020년 7월6일 대검 답변 공문

라디오에 나와 한동훈 명예훼손, 7년 이하 징역죄 해당

"사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월22일 사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와 관련해 법적 책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동훈 검사장은 이날 "유 이사장은 1년간 저를 특정한 거짓 선동을 반복해 왔다"며 "발생한 피해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8월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는 유 이사장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검찰 관계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은 서부지검에 배당된 상태다.

한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유 이사장이 자신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 않으면 명예훼손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며 "그 근거는 공문(公文)과 같은 신빙성 있는 자료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예훼손 사건을 주로 다루는 또 다른 변호사의 주장도 비슷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겠지만 근거의 신빙성은 유 이사장이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과 같은 국가기관에 대해선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데, 유 이사장은 한동훈 검사장 개인을 의혹의 당사자로 언급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한 검사장을 처음 언급한 곳이 MBC라디오라는 점에서 가중 처벌 소지가 있다. 형법상 라디오나 신문 등 매체에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저지르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일반 명예훼손죄 형량(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보다 더 무겁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