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인이 사건 학대 아닌 입양 탓했다..공감 잃어가는 文메시지

윤성민 2021. 1.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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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하다 눈물을 흘린 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공감 능력을 갖춘 ‘가슴형 리더’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문 전 의장은 “아프고 서운한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독거리는 능력이 유별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반대로 “공감 능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정인이 사건’ 관련 메시지다. ‘정인이 사건’은 아동 학대로 16개월 영아가 사망한 사건이다. 그런데 지난 4일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문 대통령의 일성은 “입양 아동을 사후에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인이 사망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입양에서 찾은 것이다. 강 대변인의 900여자 서면 브리핑엔 ‘입양’이라는 단어가 11번 등장한다.

입양 부모들은 “잠재적 아동학대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전국입양가족연대는 7일 입장문에서 “초등학생 어린 입양아동은 친구들 카카오톡방에서 ‘입양 부모는 다 나쁘고 입양된 아이는 다 불쌍하다’는 글을 발견하고도 아무 말을 못 한다”고 호소했다.
입양가족연대는 “(문 대통령의) 말씀 한마디에 …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순전히 ‘입양’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여론몰이가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입양가족연대에 따르면 2018∼2019년 아동학대로 숨진 70명의 아이 중 입양부모에 의한 경우는 1명뿐이다.

8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서 시민들이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 양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영 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은 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인이 사건’은 입양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학대 때문에 발생한 건데, 입양 탓을 하니 입양 부모들이 공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입양을 반대하는 일부 여성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어 뜨악했다”고도 덧붙였다.

당사자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한 메시지라는 지적은 지난해 11월에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SNS에 “무사하고 안전하게 수능을 치러낸다면 K-방역의 우수성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긴장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메시지에 수능을 K-방역의 홍보 기회로 여기는 듯한 표현이 담긴 것이다.

수험생들의 댓글이 폭주했다. “50만 수험생의 건강보다 K-방역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요”, “수능이 언제부터 외신에 자랑하려고 강행하는 시험이었나요”, “사람이 먼저다(X), K-방역이 먼저다(O)”라는 댓글도 있었다. 당시 청와대 한 관계자는 “메시지 관리에 실패한 부분이 있다. 수험생 입장을 너무 고려 안 했다”고 반성했다.

한 전공의가 지난해 9월 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반대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일 SNS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9월엔 의사와 간호사의 ‘갈라치기’ 논란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SNS 메시지에서 간호사들을 향해 “의사들이 떠난 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분들을 위로한다”고 썼다.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의사 파업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간호사를 격려하는 척하면서 의사들을 압박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의사들뿐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도 “대통령이 이렇게 편 가르기 해도 되나”, “국민을 반으로 쪼개서 싸우게 하는 대통령” 등의 댓글을 달았다.

한때 ‘가슴형 리더’란 소리를 듣던 문 대통령인데 왜 집권 후반기엔 자꾸 메시지를 놓고 불통 논란이 벌어지는 것일까. 결국 요즘 문 대통령이 전체 국민 여론을 골고루 접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도 잘 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 여론을 듣는 통로는 참모진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진은 ‘끼리끼리’ 경향이 강한데, 같은 편 참모진으로부터만 얘기를 듣다 보면 임기 후반기로 가면서 일반 국민의 생각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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