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추락 文, 검찰개혁 빼고 한반도 평화 넣었다

강태화 2021. 1. 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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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일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다”며 “모두의 삶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걷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신년 메시지에서 “상생의 힘으로 새해 우리는 반드시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께 일상의 회복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공군 항공통제기 E-737에 탑승해 우리 군의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며 지휘비행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는 취임 후 4번째다. 그는 매번 지난해 했던 일에 대한 평가와 함께 새로 추진할 과제를 암시하는 코드를 압축적으로 담아왔다.

하지만 올해 메시지에선 지난 한 해 정국을 흔들었던 '검찰 개혁'이란 단어가 빠졌다. 곧 출범을 앞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문 대통령이 제시했던 검찰개혁의 1차 목표이자 성과물이었음에도 이번 메시지엔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야당은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의 패배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불리한 이슈를 메시지에 담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는 당시의 지지율이나 정치 상황에 예민하게 연동됐다. 자신감이 넘칠 때엔 표현도 강해졌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지지층에 기대는 표현이 늘었다.

80%가 넘는 찌를듯한 지지율 속에서 임기 첫해를 보낸 뒤 나온 2018년 신년 메시지속 자신감은 지금과는 달랐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 메시지에서 "소망은 거의 이루어졌다”며 "작년 한해 우리 국민들은 대단했다. 나라를 다시 일으켜세웠고, 바로 세웠다”고 했다. 소위 '촛불 혁명'에 대한 얘기였다. 새해의 목표와 관련해선 “평창 동계올림픽, 패럴림픽의 성공과 한반도의 평화를 소망한다”고 했다. 실제로 2018년은 문 대통령의 말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5월 26일에는 비공개 남북정상회담, 9월(18~20일) 평양 정상회담이 이어졌다.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치러진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선거 직전엔 지지율이 77%까지 올랐지만 남북 관계 개선의 속도가 더뎌지고, 부동산값 폭등이 겹치며 그해 12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후반으로 하락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신년 메시지에서 “이 겨울, 더 따뜻하게 세상을 밝히라는 촛불의 마음 결코 잊지 않겠다”며 집권의 바탕이 됐던 ‘촛불 세력’을 재차 소환했다. 야당은 "지지율 하락에 따른 편가르기"라고 했다.

2019년 10월 범국민투쟁운동본부 등 보수단체가 주최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뉴스1]


2019년은 조국과 반 조국이 충돌한 해였다. 2019년 1월과 12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7%로 같다. 국민이 둘로 쪼개지면서 1년 내내 대통령에 대한 긍정과 부정 평가 비율은 엎치락뒤치락했다.

여론이 좌우로 완전히 갈라선 상태에서 공개된 2020년 신년 메시지에서 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을 재차 다독였다. “정의를 실천하는 따뜻하고 뜨거운 국민들이 있어 늘 행복하다”면서다. 문 대통령은 이어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며 소중하게 틔워낸 변화의 싹을 새해에는 확실한 성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정의를 실천하는 국민'과 아닌 국민으로 편을 갈랐다는 반발이 야당에서 나왔다.

그리고 꺼내든 카드가 소위 '검찰개혁'이었다. 선두에 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윤 총장의 측근을 모두 쳐내는 인사를 단행하며 ‘추ㆍ윤 갈등’의 시작을 알렸다. 공수처 설치까지 이뤄냈지만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징계라는 무리수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상황은 급전직하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 배제 결정으로 출근하지 못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맞이한 2021년 문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에선 '검찰 개혁'이 사라졌다. 대신 "방역은 물론 경제와 기후환경, 한반도 평화까지 변화의 바람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중 '한반도 평화, 변화의 바람'이란 대목에 주목한다. 지지율이 40% 밑으로 하락한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로 다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본다.

여권은 7월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2018년 평창 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됐듯 ,도쿄 올림픽에서 동북아 평화 무드를 연출하는데 정부 전체가 혈안이 돼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한 때 죽창을 들고 맞서자던 일본에 대해 파상적인 화해 공세를 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경질된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지난달 31일 청와대를 떠나면서 "흔히 임기 후반부를 하산에 비유합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입니다. 임기 1년의 대통령에 새로 취임한 분을 모신다는 자세로 각자 마음을 다잡읍시다”라는 문 대통령의 말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이 2007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취임하면서 한 얘기였다. 여권 관계자는 "13년 전 '임기 마지막 날 멈춰선 정상'을 말하며 의욕에 차 있던 문 대통령이 이번엔 '코로나 극복과 남북관계를 통해' 마지막 역전극을 노리고 싶어한다"며 "그런 심정이 신년 메시지에 녹아 있는 듯 하다"고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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