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여 공수처' 출범 길 열었다.. '독주'로 '독주' 넘은 거대여당

이서희 2020. 12. 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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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려하자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뉴스1

8일 국회는 지난해 ‘패스트트랙 대치’의 데자뷔였다. 174석 거대 여당은 개혁 입법의 명분을 앞세워 단독 입법을 강행했고, 야당은 온몸으로 저지를 시도했으나 그 뿐이었다. 독주하는 여당과 무기력한 야당, 그 사이 난무한 고성과 삿대질은 1년 전의 동물 국회를 연상시켰다.

1년여 전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패스트트랙에 실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함으로써 공수처 출범의 발판을 놨다. 출범까지 남은 마지막 고비도 힘으로 넘었다. 민주당 스스로 만든 야당의 공수처장 추천 거부권을 법에서 삭제해버렸다. '독주'를 '독주'로 넘어선 셈이었다.

'입법 독재'란 비판을 감수하고 민주당은 '검찰개혁의 완성’을 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 정리다. 당·청이 공수처 출범을 추동한 명분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검찰로의 개혁'이었다. 그러나 공수처장을 사실상 대통령이 원하는 인사로 임명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면서, 공수처에 대한 신뢰가 무거운 도전을 받게 됐다.

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윤호중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려 하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저지하고 있다. 뉴스1

의사봉 빼앗고, 마이크 꺾고… 법사위 난투극

공수처법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통과됐다. 민주당은 법사위 안건조정위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어 개정안을 착착 처리했다. 야당이 개정안 심사를 지연시키려고 7일 요청한 안건조정위는 조정위원 6명 중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위원 4명의 찬성으로 1시간 만에 끝났다. 민주당은 곧바로 전체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을 둘러싸고 “날치기도 이런 날치기가 없다” “대명천지에 이런 독재가 있을 수 없다”고 고성을 질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위원장 의사봉을 빼앗으려다 실패하는가 하면, 민주당 간사의 발언을 막기 위해 마이크를 꺾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수적 열세를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빠루'까지 동원한 지난해 패스트트랙 충돌로 의원들이 무더기 고소·고발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국민의힘은 '선'을 넘지 못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8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가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박주민 의원들을 향해 항의하고 있다. 뉴스1

법 개정 불가피했다지만, 공수처 신뢰 타격

공수처법 개정안은 최종 관문인 본회의를 넘으면 입법이 완성된다. 민주당은 9일 본회의 처리를 예고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야당의 거부권을 없앤 것이 개정안 골자다. 현행법은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에 국회 추천 인사(여당 2명ㆍ야 2명)까지 총 7명으로 구성된 공수처장후보추천위가 6명 이상의 찬성으로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택하게 돼있다. 개정안은 추천위의 의결정족수를 줄여 야당 뜻을 무시할 수 있게 했다. 정당이 열흘 안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대신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부칙을 달아 공수처 출범과 인선이 속도를 낼 수 있게 했다.

민주당은 법 개정이 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엄정히 수사하기 위한 독립된 기구 설치는 검찰의 힘을 빼려는 문재인 정부의 숙원이었다. 하지만 야당 반발을 무릅쓰고 입법을 강행해 놓고 1년 만에 스스로 만든 법을 또 고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소수 의견'을 없는 셈 치는 이런 방식이라면, 거대 여당은 어떤 법이든 바꾸고 만들 수 있다. 입법 만능주의를 조장할 우려도 있다.

공수처법의 절차적 정당성 훼손으로 공수처의 권위가 떨어진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릴 것이다. 야당 거부권이 사라져 정부ㆍ여당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공수처장에 인선될 가능성도 커졌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 같은 공수처장이 문지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강행처리와 관련한 긴급기자회견을 위해 주호영 원내대표와 함께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오대근 기자

야 “필리버스터” 여 “바로 임시국회”… 정국 격랑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에서 '경제 3법' 중 하나로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을 비롯해 대북전단살포 금지법과 5·18왜곡처벌법, 국가정보원법 등을 무더기 처리했다. 또 정무위에서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진상 규명을 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활동 기한 연장을 골자로 하는 ‘사참위법’ 등도 통과시켰다. 상임위마다 야당 의원들이 큰 소리로 반발하다 지치는 장면이 반복됐다.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들은 일단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국회법에 따라 밤 12시에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료된다. 민주당은 10일 임시국회를 소집해 지체 없이 법안을 표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야당은 극한 투쟁을 경고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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