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文대통령 우상화는 '수령님 문화'와 비슷"

곽아람 기자 2020. 11. 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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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신간 낸 진중권 심층 인터뷰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현 정권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는 진중권(57) 전 동양대 교수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상상)라는 책을 냈다.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주장하며 좌파의 문제점을 짚었다. 서민 단국대 교수 등과 함께 ‘조국 흑서’(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내기도 한 진중권은 이번 책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라 썼고, “문재인 대통령의 우상화에는 NL의 개인숭배 문화가 있는데 북한식 정치 문화가 남한의 부르주아 정치에까지 투영된 것”이라 분석했다. “지식인이 정치와 결탁하면 ‘기생충’ 되는 것”이란 독설도 잊지 않았다. 16일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항공점퍼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진중권을 서울 연남동에서 만났다.

-진중권이 ‘제1 야당’이라고 한다. 투사로 사는 것, 힘들지 않나.

“욕먹는 게 힘든 게 아니다. 옛날엔 소수여도 ‘지성적 동지’라는 그룹이 있었다. 이제 그들이 없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다.”

-유독 ‘조국 사태’에 실망한 까닭은.

“그 전엔 비리 사건이 나오면 사과하는 척은 했는데 이번엔 기준 자체가 무너졌다. 조국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이야기를 하면서 상징 자본을 쌓았다. 사람이 별 반성 없이 살다 보면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친구로선 용서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 행동이다. 그가 진실을 말해야 나도 도와줄 수 있다.”

-책에서 윤석열 총장을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라 지칭했다. 윤석열을 어떻게 보나.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고 검찰 조직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사회의 거악을 척결하는 것이 검찰의 의무이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공정하게 칼을 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대권 주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의미 없다. 윤석열은 검사고 끝까지 남아 정의의 사표가 돼야 한다. 그가 권력으로부터 검찰 수사를 보호하고 퇴임하느냐가 시민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한 관심사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책에 썼다.

“문 대통령은 재미있게도 철학이 없다. 친노 세력이 폐족 상태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때 필요한 카드로 사용됐고 지금도 거기 얹혀 가는 것 같다. 윤리적 이슈를 놓고 사회가 분열됐을 때 통합하고 기준을 세워주는 기능을 대통령이 해야 하는데 조국 때는 오히려 기준을 무너뜨렸고, 이번 추미애 장관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강요 때도 정리를 해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지자들이 NL의 개인숭배 문화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령님 문화’ 비슷한 것이다. 전대협 ‘의장님’이 가마 타고 입장하던 봉건적 문화의 습속이 낳은 문화 지체 현상이다. 이걸 대통령이 알아야 하는데 감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밀의 ‘자유론’을 거론하며 광복절 집회 봉쇄 차벽을 옹호한 걸 공격했다.

“밀이 말하는 ‘위해 원칙(harm principle)’은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나. 밀의 자유론을 제약론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가 성경서 한 구절만 딱 따다 제멋대로 써먹는 양상이다. 재미있는 건 지금까지 민주당의 일련의 입법이 다 반자유주의적이란 거다. 친일파 파묘법, 역사 왜곡금지법,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 박형순 금지법, 최근의 한동훈 금지법까지.”

-민주당에 하고 싶은 말은.

“너희가 표방하는 정치 이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다. 그건 너희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없기 때문이라고. 일단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킨 다음 진보와 보수가 합리적으로 논쟁하고 경쟁해야 한다. 웃기지 않나. 내가 좌파인데, 자유주의의 한계가 아니라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당신은 궁극적으로 뭘 위해 싸우나.

“먹물의 의무. 먹물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켜야 한다. 노동자들이 해주는 옷 입고 농민들 밥을 먹고 있으니 밥값 해야 한다. 지식인이 정치와 결탁해 어용으로 변해가면 ‘기생충’ 되는 거다.”

-좌파 진중권이 태극기 세력의 성원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들이 환호하는 건 저쪽을 때리기 때문이다. 보수가 잘되길 바란다면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저쪽을 까는 건 시원하지만 사람이 사이다만 마시고 살 수는 없다.”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피지기가 안 된다. 옛날에 보수는 ‘집에다 돈 벌어주는 아버지’였는데 지금은 ‘돈 쓰는 할아버지’가 됐다. 더 이상 주류가 아닌데 아직도 다수자 전략을 쓴다. ‘빨갱이’라 낙인찍으면 저들이 고립될 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토착 왜구’라 불리며 자신들이 고립된다. 시장만능주의와 권위주의, 극우반공주의를 결합해 정체성으로 생각하는데 이제 먹히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연금, 의료보험, 그린벨트를 도입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했다. 국가에 필요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는 유연함과 역동성이 있었는데 이걸 하면 보수고, 안 하면 빨갱이라 하다 보니 정체성의 덫에 걸렸다. 진영을 떠나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개인으로서의 시민을 키워야 하는데 멀쩡했던 시민도 정당의 신민으로 만들어 버린다. 난 보수에 대한 애정은 없다. 그러니 너무 좋아해선 안 된다. 나중에 뒤통수 때릴 때 미안하니까, 하하하!”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은 서울 강북의 17평 빌라에서 고양이와 산다. 아내와 아들은 독일에 있다. 새벽 네 시까지 글 쓰고 잠든다. 정오 즈음 기상해 15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다이어트 콜라로 점심을 먹고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운다.

-당신을 한국적 패거리 문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다락방서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누나들(음악평론가 진회숙, 작곡가 진은숙)이 독일서 왔다는 건 신문 보고 안다. 다만 고등학교(양정고) 친구들 모임에 최근 나가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 후 동양대에 사표를 냈다. 가장이 할 법한 선택은 아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들판의 백합과 하늘의 새도 돌보시는데 너 하나 돌보지 못하겠느냐는 구절이 있다. 옳은 일을 하면 그다음엔 모든 게 잘 풀릴 거라는 믿음이 신앙이라 생각한다. 돈 쓰는 법을 몰라서 어디 갖다 놔도 번역하건 원고 쓰건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런데 진짜 영웅적인 건, 그런 대책 하나도 없어 가족을 위해 조직에서 갖은 더러움 다 참고 견디는 분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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