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이 치료한 신의진 "나라가 조두순 못막아주면, 모금 나설것"

권순완 기자 2020. 9.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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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 심리치료한 의사 신의진
조두순 성폭행 사건 피해 아동 주치의이자 전 국회의원인 신의진 의사.

“아동 성범죄자와 그 피해자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정신적 학대나 다름없습니다. 나라가 그런 상황을 막아줄 수 없다면 시민들의 뜻이라도 모아볼 생각입니다.”

신의진(56)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68)의 경기 안산 정착 계획에 대해 “참담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회장은 “최근 나영이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조두순을 피해 이사도 못 가고 있는 사정을 들었다”며 “나영이를 돕기 위해 모금 운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조두순은 오는 12월 1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 경기도 안산 집으로 돌아가 살겠다는 의사를 최근 밝혔다.

신 회장은 조두순으로부터 잔혹한 성범죄 피해를 본 ‘나영이’(가명)의 초기 심리 치료를 맡았던 소아정신과 전문의다. 2008년 12월 전과 18범이던 조두순은 초등학교 2학년 나영이를 경기도 안산의 교회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과 온갖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 법원에서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신 회장은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동시에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서울해바라기센터’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아빠 손을 잡고 해바라기센터를 찾아온 아홉 살 나영이를 만났다. 신 회장은 “끔찍한 일을 겪은 나영이는 한동안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말수도 적고 음식도 먹지 않으려 했다”며 “배변주머니 제거 수술 성공과 심리 치료가 이어지면서 나영이 마인드가 점차 긍정적인 상태로 바뀌었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나영이네 가족은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에도 안산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고 있다. 조두순이 거주할 곳은 피해자 나영이가 사는 집에서 1㎞도 떨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성범죄 피해자의 정신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조두순 같은 흉악 범죄자는 징역 기간을 마친 다음에도 시설 등에서 강제로 치료받게 하는 ‘보호수용제도’가 시급하게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보호수용제도는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지 않다.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인권 침해이자 이중(二重) 처벌이라는 견해가 맞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영이 아버지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조두순을 안산에서 떠나게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신용대출을 받아 (조두순의 이사 비용을)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두순에게 이사비를 주는 것도, 나영이네 가족이 스스로 멀리 이사를 가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고 신 회장은 설명했다.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신 회장에 따르면, 이는 나영이 가족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 나영이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급여로 매달 3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 큰딸, 작은 딸인 나영이 4인 가족이 기초생활급여와 아버지의 일용 건설 노동 수입까지 합쳐 월 250만원이 되지 않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픈 상태다. 큰딸은 아직 취직 전이다. 신 회장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도 은행 대출금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어, 수도권에 마땅한 전셋집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신 회장은 “최근 나영이 가족에게서 이런 사정을 전해 들었을 때, 예전 나영이가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며 “국가가 이런 잔혹 범죄의 피해자들을 끝까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실정에 통탄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영이 주치의’로 맺은 인연에 책임감을 느껴 모금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모금은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홈페이지에서 23일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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