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천박하고 초라한 '후레자식 정치'
여당 대표의 “천박한 서울” 막말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해명 내용과 태도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한강변에 배를 타고 지나가면 ‘저기는 무슨 아파트, 한 평에 얼마’ 그걸 쭉 설명해야 한다”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한 건 지난 24일 세종시청 특강에서였다. 이 발언이 언론에 보도돼 논란을 빚자 민주당은 “언론이 앞뒤 문맥을 생략한 채 특정 발언만 문제 삼았다”며 되레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야당의 비판에 대해서도 “강연의 전체 문맥을 무시했다”고 되받았다.

서울을 ‘천박한 도시’로 지칭한 게 논란의 핵심인데 한마디 사과도 없이 ‘문맥’ 운운하며 큰소리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맥락이 중요하지 일부 표현 따위가 무슨 문제냐”는 이 대표와 추종자들의 정신세계는 골이 깊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부산에 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데 도시가 왜 이렇게 초라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는 말로 부산 사람들의 염장을 질렀을 때도 “민주당 후보를 찍어주면 부산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얘기”라고 넘어갔다. 장애인단체 모임에서 “정치권에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까지 포용하기는 쉽지 않다”며 장애인을 모욕하고, “(여성들은) 경력이 단절된 뒤에는 열심히 무엇을 안 한다”는 말로 경력단절여성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이르기까지 ‘막말 어록’이 차고 넘친다.

자기와 생각이나 처지가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담은 말을 단순한 ‘실수’로 넘길 수는 없다. 배려와 이해, 포용은커녕 섬뜩한 증오와 적대(敵對)를 품은 말도 수시로 쏟아낸다. 부하 여직원 성추행 추문을 남긴 채 자살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에서의 언동이 단적인 예다.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은 없으신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을 “그건 예의가 아니다”고 자른 뒤 내뱉은 말은 듣는 귀를 의심케 했다. “그런 말을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나.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현직 시장의 갑작스러운 자살은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터다. “후레자식”이라는 쌍욕을 그 기자만이 아니라 박 전 시장의 느닷없는 자살 배경을 알고 싶어 한 모든 국민에게 던진 것이라고 하면 비약일까.

이 대표의 언행에는 정치인으로서의 자기 확신을 넘어 “우리만이 옳다”는 독선과 오만이 병적으로 배어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4월 총선 직전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을 ‘천박하고 주책없는 당’이라며 “지금까지 해온 게 전부 발목잡기, 토착왜구 그런 것 아니냐”고 상소리를 퍼부은 것을 단순한 선거용 발언으로만 넘길 수는 없다. 세종시청에서의 ‘천박한 서울’ 특강에서 “통합당은 의석도 소수고 총선에서 참패해 터무니없는 절망 속에서 나오는 주장을 많이 한다”고 말한 것은 편협하고 폐쇄적이며 모난 그의 성정(性情)을 거듭 보여준다. 총선 당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야당 후보들의 막말을 공격하면서 “막말의 기저에는 증오가 깔려 있다. 증오와 막말은 슬프도록 소모적이다”고 개탄했는데, 이 대표부터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의 말에는 오만과 독선을 넘어 ‘도그마(dogma: 이성적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강령)’가 깔려 있다는 지적도 많다. 2년 전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측 인사들에게 한 말이 그랬다. “우리가 정권을 뺏기면 (교류를) 못하기 때문에 제가 살아있는 한 절대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한 발언 말이다. 북한에 가서 그런 말을 왜 했는지를 떠나 ‘제가 살아있는 한’ ‘절대’ 따위의 모진 표현에 섬뜩함을 느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온갖 불확실성이 넘쳐나는 시대에 도그마에 갇힌 정치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언제 어떤 변수가 돌출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해법을 끼워 맞추는 연역(演繹)적 접근을 전제하고 있어서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시하면서 개별 사안과 환경에 최적화된 답을 찾아내는 귀납(歸納)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진 이즈음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눈감은 독단과 독선, 오만과 무지(無知)의 ‘진영정치’가 정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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