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공포에 떠는 전문가들
정용훈 카이스트(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요즘 인터넷에서 몰매를 맞고 있다. 지난 12일 '탈핵 정책의 문제점' 토론회에 참석해 일본 후쿠시마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발언한 게 화근이 됐다. 그는 "후쿠시마에 1년 있으면 받을 방사선량이 어른은 4m㏜(밀리시버트), 어린이는 7m㏜가 조금 넘는데 북유럽 일부 지역은 (자연 방사선량이) 10m㏜를 넘는다"고 했다.
정 교수의 발언은 동영상뿐 아니라 캡처된 형태로도 여러 인터넷 사이트와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사이트마다 비난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나라 팔아먹을 ×' '미친 ××' '원전 마피아' 등은 양호한 축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대부분이다. 반면 정 교수의 발언을 과학적으로 반박한 글은 찾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논란이 되는 정책들을 거침없는 쏟아내는 와중에 애꿎은 전문가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사실을 말해도 정부 정책이나 대중의 입맛에 안 맞으면 정 교수와 같은 처지에 몰리기 일쑤다. 한 국책 연구소에서 일하는 중견 연구원 A씨도 얼마 전 그런 경험을 했다. 그의 연구 논문에 대해 이메일과 전화로 비난과 욕설, 항의가 쏟아졌다. 특정 집단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몇 달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체중도 많이 빠질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 A씨는 "자칫하면 적폐로 몰릴까 봐 그 사건 이후 우리 연구소 박사들은 욕먹을 만한 주제는 아예 연구 대상으로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최근 한 민간 경제 연구소에서 일하는 B씨에게 전화했다. 그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며 입을 닫았다. 익명을 보장하겠다고 설득했지만 "그래도 신원이 드러날 수 있다"며 끝내 거절했다.
가장 민주적이라고 자부하는 정권이 통치하는 시절에 전문가와 지식인들이 두려움 속에 하나 둘 입을 닫는 것은 기괴하고도 서글픈 일이다. 이런 일이 거듭된다면 결국에는 정권과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만 하는 얼치기 전문가만 남을 것이다. 사실과 거짓, 이성과 감성을 적당히 버무린 언어로 대중에 영합하는 이런 얼치기 중에는 이미 '참지식인'으로 대접받는 이도 적지 않다. 이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적으로 어떤 장단점이 있고, 빈곤층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 이론과 통계, 실증 사례로 따지기보다 "최저임금으로 설렁탕 한 그릇도 못 사먹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고 간단히 규정해 버린다. 왜 자장면이나 치킨도 아니고 하필 설렁탕이어야 하는지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전문가들을 모조리 침묵시킨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이 될 리 없다. 17세기 종교 재판관들이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침묵시켰다고 해서 태양이 지구를 돌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도 어느 연구실에서는 누군가 나지막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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